20200902 큐티나눔
요셉을 팔다
본문의 중심내용
요셉은 형들이 ‘잘 있는지’(샬롬, 14절) 확인하러 먼 길을 걸어 도단에 이르지만, 형들은 그를 구덩이에 던진 후,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립니다.
[ 창세기 37:18 - 37:36 ] (찬송408장)
요셉을 죽이려는 형들
18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팔려가는 요셉
25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31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6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도움말
19절) ‘꿈꾸는 자’(히, 바알 하할로모트)의 원래 의미는 ‘그 꿈의 주인’이다. 형들은 조롱하는 말로 이 말을 사용했지만 실제로 요셉은 나중에 꿈을 해석하고 성취하는 자가 된다.
20,22,24,28절) ‘구덩이’(히, 보르)는 물을 받아놓기 위해 바위를 깎아 만든 깊이가 약 2-6m 되는 수조 또는 우물을 가리킨다. 물이 마른 구덩이는 지하 감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갇히는 곳도 같은 표현이다(40:15; 41:14).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8-20절 요셉의 형들은 ‘샬롬’을 묻기 위해 오는 요셉을 ‘살인’하기로 모의합니다.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넣음으로 그 꿈까지 죽이고 싶어합니다. 형들이 요셉의 꿈을 이토록 싫어한 이유는 그 꿈이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향한 미움과 시기,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 때문에 그들은 해서는 안 될 일을 꾀한 것입니다. 그러나 ‘샬롬’은 결코 악행으로 얻을 수 없고, 사랑 역시 폭력으로 쟁취할 수 없습니다.
21-24,29,30절 장자 르우벤은 요셉을 구하는 데 실패합니다. 그는 요셉을 다시 아버지께 돌려보내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적극적으로 형제들의 모의를 꾸짖지 않고, 또 요셉을 보호하는 일에 소극적으로 행동합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리를 비움으로 장자의 권위도, 책임감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면서도 선뜻 나서기를 머뭇거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5-28절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깁니다. 이러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면서 요셉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처럼, 돈을 받고 매매한 사람은 그들의 ‘동생이요, 혈육’이고, 이후 아버지를 속이는 일 역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혹시 이러저러한 악을 행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스스로 속이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추구할 삶은 차악이 아니라, 최선의 삶입니다.
31-36절 형제 요셉을 팔아넘긴 악행이 아버지 야곱을 속이는 죄로 이어집니다. 야곱도 염소 새끼 두 마리로 아버지를 속인 적이 있었는데(27:1-29), 이제 그의 아들들도 숫염소의 피로 아버지를 속입니다. 동생을 팔아넘긴 죄도 크지만, 아버지로 하여금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 고통을 준 것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로부터 약 20년 동안 요셉은 야곱에게 죽은 아들이 되고 맙니다. 야곱에게는 애통의 세월이고, 형들에게는 죄책감이 시달리는 고통의 세월입니다. 요셉만 제거하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할 줄 알았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만 남은 것입니다. 죄가 또 다른 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직하고 용기 있는 태도로 죄의 악순환을 끊어야겠습니다.
기도공동체-미움이 증오로, 증오가 악행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다스리게 하소서.
열방-코로나19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봄까지 최대 6억 명이 감염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속히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어 인류가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