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1 큐티나눔

2021. 4. 1. 09:13큐티나눔

사형을 언도받으신 예수님(눅23:12-25)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성난 군중의 거센 반발에 굴복해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합니다.

도움말
17절) 어떤 고대 사본에는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놓아주더라’라는 구절이 있다.
18절)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주장하는 무리 배후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선동이 있었다고 기록한다(마 27:20; 막 15:11). ‘바라바’는 아람어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전체 세속 법정이 유대인들의 종교 법정보다 공정했습니다. 빌라도가 주재하는 로마 법정은 예수님을 살리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부패한 종교, 욕망으로 가득 찬 교회는 세상의 상식보다 왜곡될 수 있습니다. 섣불리 자신하지 말고 끊임없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물으며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13-16,20,22-25절 빌라도는 처음에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썼습니다. 예수님을 고소한 모든 내용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그래도 소란을 일으켰으니 매질만 하고 석방하기로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군중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자 결국 소신을 꺾고 그들의 요구대로 십자가형을 선고했습니다. 빌라도가 군중의 목소리에 굴복한 것은 예수님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피지배 민족의 일개 떠돌이 교사가 쓴 누명을 벗기려고 군중의 폭동까지 무릅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없는 사람을 깔보고 그의 인격을 무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사고방식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차별 없이 모든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18,19,21,23절 군중은 막무가내로 예수님을 죽이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바라바는 무력으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투옥된 민족주의 혁명가였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바라바가 실패한 일을 예수님이 이루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수의 신분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하자, 무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했고 차라리 바라바가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그들이 원한 건 정의와 사랑이 아니라 힘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칼을 든 그리스도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칼끝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5절 바라바가 사면되고 예수님이 그 대신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많은 ‘아버지의 아들’(바라바)을 살게 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바로 예수님 덕에 살게 된 또 한 명의 바라바입니다. 칼과 힘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가 예수님의 자비와 희생으로 구원받은 바라바입니다.

기도
공동체-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몬 빌라도와 군중의 태도를 버리도록 도와주소서.
열방-G20의 지도자들이 전 세계 보건 분야의 즉각적인 자금 조달 요구에 협조하겠다는 성명을 채택하였다. 가난한 나라들에게 코로나19 백신과 의료물자가 공평하게 배분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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